알리산 Clavert 키보드 구매기

2025. 1. 14. 12:02Machine, Device/키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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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발견, 그리고 주문.

  때는 바야흐로 2024년 말, 알리 익스프레스를 구경하던 도중 특이하게 생긴 키보드를 발견한다. 아이리스 키보드를 사용하는 과정에서 틸팅과 관련된 내용을 찾아보다가 손목을 수평으로 눕혀서 장시간 작업하는 것이 피로를 유발한다는 글을 본 적이 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손목의 피로감을 줄이기 위해 개발된 디자인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마침 알리 익스프레스에서는 연말을 맞이하야 $100 이상 결제 시 $25 할인 쿠폰까지 지급하고 있었기에, $175이라는 나름 저렴한(?) 가격에 주문할 기회가 왔다. 보너스를 받거나 1430원에 육박하는 환율이 좀 떨어지면 구매할 생각이었지만, 할인율을 보자 도무지 참을수가 없어서 바로 주문을 해버렸다. 써보고 어느정도 익숙해진 뒤, 업무에도 무리없이 활용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면 회사에서 사용하고 있는 아이리스 키보드도 대체할까... 하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는데, 환율이 1470원을 돌파해버리는 바람에 그런 계획은 조용히 물거품이 되고야 말았다. 아무튼 주문을 마치고나니 알리익스프레스에서는 드물게 판매자로부터 '제작 기간에 한달 정도가 소요되니 배송 기간을 연장해달라'는 메시지가 왔다. 어째 수상했지만 이미 결제도 했겠다, 배송 기간 연장부터 했다.

구매 기간부터 연장해달라는 판매자. 조금 당황스러웠다.

2. 기다림, 그리고 또 기다림.

  알리에서 한 두번 주문해본 것도 아니고, 요즘에는 많이 빨라졌지만 옛날에는 길게는 배송까지 2개월에서 3개월까지도 걸렸으니 기다리는 게 어려운 일은 아니었지만, 워낙 사용감이 궁금한 키보드다보니 2주가 지날 무렵에 아직 제작중인지 판매자에게 문의를 넣었다. 안타깝게도 다시 한 번 배송 기간을 연장해달라는 얘기만 들을 수 있었다. 아무래도 할인이다 뭐다 해서 주문이 좀 밀렸나보지. 작업이 얼마나 진행됐는지 문의해볼 요량이었지만, 배송 기간을 연장해달라는 말만 들을 수 있었다.

작업 진행 상황은 들을 수 없고, 배송 기간을 연장해달라는 말만 들을 수 있었다.

  배송 기간을 연장해주는 것 외에는 답이 없어보였기 때문에, 연장을 하고 조금 더 기다리기로 했다. 크리스마스를 포함해서 이래저래 연휴가 끼어있는 연말이었으므로, 이래저래 바쁘다보니 그나마 좀 수월하게 신경을 끄고 기다릴 수 있었던 것 같다.

3. 드디어 도착, 그리고 조립.

  시간이 지나 2025년 새해가 밝은지도 어언 일주일이 지난 시점에, 드디어 알리에서 택배가 도착했다. 알리에서 배송을 주문하면 박스 없이 오는 일은 너무 흔한 일이라서 이제는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될 와중에, 집에 도착하니 왠 럭비공(?)같은 게 있었다. 파손을 염려해서 에어쉘을 이중 삼중으로 포장한 탓이었는데, 이럴거면 박스포장을 해주는 편이 비용면에서나 포장을 하고 뜯는 측면에서나 편리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에어쉘이 이중삼중으로 포장된 채 도착한 키보드

  아무튼 포장을 뜯고나니 3D 프린팅한 외장에 USB 케이블, 그리고 2.4GHz 동글이 포함된 구성품을 살펴볼 수 있었다. 생각보다는 단촐한 구성인 것을 떠나, QMK를 지원한다고 되어있을 뿐 모델명도 적혀져있지 않아 난망하기 그지없었다. (이 시점까지 어떤 키보드의 레플리카인지도 모르고 있었다.) 일단 판매자에게 펌웨어를 어떻게 만들면 되는지, 모델명이 어떤건지 문의해놓은 뒤 방구석에 굴러다니던 적축 스위치를 하나하나 꽂기 시작했다.

포장에 비해 단촐한 구성품. 일단 스위치를 꽂기 시작했다.

  출력 퀄리티가 그렇게까지 좋은 편은 아니었는데, 스위치를 꽂는 중 한 곳은 정리가 덜 되서 스위치가 들어가질 않았다. 다행히 예전에 프라모델을 만들 때 사용하던 아트나이프가 방구석에 굴러다니고 있어서, 튀어나온 부분을 정리하고나서야 스위치를 모두 꽂을 수 있었다. 그리고 알리익스프레스를 들어가보니, 판매자로부터 메시지가 온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우선 한화로 750원 상당을 결제하면 어떤 프로그램을 써야할지 알려주겠단다. QMK라며...? 오픈소스 키보드가 아니었던가. 이게 대체 어떻게 된거람. 아무튼 그렇게 부담스러운 금액은 아니고, 그 오랜 세월을 기다려서 도착한 키보드를 못 쓰는 것 보다는 나으니 일단 결제부터 했다.

모델명과 펌웨어 작성법을 문의하자 결제부터 하라는 판매자. 한화로 750원 정도라서 부담은 없지만 아니꼽긴 하다.

    아무튼 지금 중국은 저녁 10시라서 내일 출근한 뒤에 알려주겠다는 답변을 하는 판매자를 보고있자니, 뭐 이런 경우가 다 있나 싶어서 검색해보자 Clavert 키보드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단 Clavert는 ZMK 펌웨어를 사용하고 있고 USB로 연결한 뒤 리셋모드에 진입하면 이동식 저장장치로 잡히는데(IRIS CE와 비슷하다.), 알리에서 구매한 이 키보드는 USB로 연결해도 아무런 반응이 없는 걸 보니 외장 케이스만 Clavert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아마도 Clavert 레포지터리에서 키를 커스터마이징한 뒤 펌웨어를 구워도, 이 키보드에는 쓸 수 없겠지. 그런 결론을 내리자, 얌전히 다음날까지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4. 다음날이 되서 도착한 것은...

  다음날 아침이면 보내준다던 펌웨어 작성법은 12시가 될 때까지 오지 않았고, 결국 판매자에게 다시 채팅으로 문의하자 이메일을 불러달라는 답변을 받을 수 있었다. 환장하기 그지없는 상황이다. 결국 오후 5시가 지나서야 받게된 이메일에는 별다른 내용 없이 PDF 파일이 하나 첨부되어있었는데, 어디서 많이 본 PDF 파일같았다. 곰곰히 생각해보니 알리에서 이런저런 키보드를 구경할 때 발견했던, VIAL에 대한 가이드였다.

 

아침이라며... 결국 오후가 되서야 VIAL을 사용해서 커스터마이징 가능하다는 답변을 들을 수 있었다.

  짐작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케이스만 Clavert일 뿐, 내부는 다른 모양이었다. 뭐, 사실 케이스만 같다면 Clavert와 같은 사용감을 가질테니까 나로써는 큰 문제가 없지만, 오픈소스 키보드를 이런식으로 판매해도 문제는 없는건가. 아무튼 짜증나는 경험을 하긴 했지만 이제 사용할 준비는 끝났다. 아무리해도 블루투스로는 잡히지 않아서 어떻게 해야했는지 난망했는데, 동봉된 2.4GHz 동글을 꽂으니 맥에서도 인식되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다만 Vial을 실행하면 다음과 같은 파이썬 에러 메시지가 출력됐고, 웹 버전 Vial을 실행하면 키 할당까지는 문제 없었지만 한 쪽이 연결되면 다른 한 쪽이 연결 해제되는 등 문제가 있었다. 문득 USB 3.0 포트의 신호 간섭으로 인해 2.4GHz 무선신호가 방해받을 수 있다는 글이 생각나, 다이소에서 USB 2.0 멀티포트를 사왔다.

USB 케이블을 직접 꽂아서는 인식되지 않고, 2.4GHz 동글을 통해서만 연결이 가능하다.

  다행히 멀티포트와 연장선을 키보드 근처까지 늘여서 2.4GHz 동글을 꽂으니, 양쪽 모두 정상적으로 인식할 뿐만 아니라 Vial 역시 정상적으로 동작한다. 우선 전에 사용하던 아이리스 키보드와 동일한 키설정으로 맞췄는데, 아이리스 키보드와 비교하면 키가 더 많아서 뭘 더 할당해야할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우선 오입력을 줄이기 위해 남는 키는 비워둔 채로, 사용하면서 하나씩 키를 추가하기로 했다.

USB 2.0 멀티포트를 사용하자 에러가 사라진 Vial

5. Clavert 키보드의 레플리카를 사용해본 소감

  아이리스 키보드를 사용할 때 Via를 사용하지 않고 직접 펌웨어를 만들기 시작한 이유는 두 가지였다. 하나는 Via는 지원하는 레이어가 제한적이라는 점이고, 다른 하나는 마우스를 조작하기 위해선 결국 펌웨어를 만들 때 설정을 건드려줘야 한다는 점이었다. Vial을 사용하는 Clavert 키보드 레플리카의 경우 레이어의 제한도 없고, 마우스 키 역시 별다른 설정 없이도 바로바로 할당할 수 있기 때문에 펌웨어를 직접 만들 필요는 없었다.

가운데 손가락이 위치한 E열이 움푹 패여있어서, 손가락을 올려놨을 때 모든 손가락의 굽힌 각도가 비슷해진다. 신기해라.

  일단 손가락을 올려놓아보니 가운데가 움푹 파여진 키 배치로 인해서 오타가 많이 발생했는데, 중지가 위치한 E열이 다른 키에 비해서 반 칸에서 한칸정도 차이가 났기 때문이었다. 중지를 가운데에 E열에 고정해놓은 상태로 타이핑하다보면 손목이야 편한데, 아무래도 익숙해질 때까지는 시간이 걸릴 것 같았다. 하루 이틀이 지나고나니 중지를 E열에 고정해놓지 않고도 타이핑할 수 있게 됐는데, 여전히 키 위치를 착각해서 오타가 발생하기는 했지만 손목 자체는 고정해놓고 쓰다보니 자세는 편했다. 여전히 쉬프트를 누른 채 다른 키를 입력하는 건 귀찮은 일이었기 때문에, 슬슬 세벌식을 연습해야하는 시기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6. 마무리

https://github.com/thlintw/clavert

 

GitHub - thlintw/clavert: Vertical, wireless, ergonomic split keyboard

Vertical, wireless, ergonomic split keyboard. Contribute to thlintw/clavert development by creating an account on GitHub.

github.com

  Clavert 키보드는 오픈소스로 위 레포지터리에 공개되어있어, 하드웨어적인 지식이 있다면 케이스를 3D 프린터로 출력하고 기판을 연결해서 직접 만들 수 있다. 내 경우에는 하드웨어적인 지식도 없고, 그 쉬운 납뗌조차 못하기 때문에(...) 알리에서 레플리카를 할인할 때 주문하게 됐는데, 여러모로 불쾌한 경험도 다소 섞여있기는 했지만 결과만 놓고 본다면 꽤 만족스러웠다. 물론 지금은 환율 문제도 있어서 하나 더 주문하기는 힘들 것 같지만, 기회가 된다면 다른 키보드들도 주문해보고싶다.

  아이리스 키보드를 사용할때도 세벌식을 사용해볼까...라는 생각을 하긴 했지만 도무지 적응하지 못해서 포기했는데, Clavert 키보드의 경우에는 Shift 키를 새끼 손가락으로 입력하는게 익숙하지 않아서 자연스럽게 세벌식 생각이 났다. 물론 세벌식이라고 Shift 키를 입력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아무튼 나중에 여유가 되면 다른 키보드도 주문해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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