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RIS56 키보드를 마련했습니다.

2023. 6. 16. 01:50Machine, Device/키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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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스플릿 키보드가 갖고싶어!

떄는 바야흐로 2020년, 인체공학적인 키보드를 만들겠다고 문림 프로젝트가 시작될 떄였습니다. 아쉽게도 프로젝트 문림 자체는 펀딩 목표 금액이 높았던 탓인지, 아니면 생각보다 많은 이들의 관심을 이끌어내지 못했던 탓인지, 결국 목표금액을 달성하지 못하고 끝나버렸죠. 그 이후로 몇 년의 세월이 흘러서, 문림은 몇 차례 주문을 받았으나 결국 개발하시던 분의 건강 문제로 중단되고 말았습니다. 가끔씩이나마 좋은 소식이 있을까싶어서 틈틈히 찾아보던 프로젝트였는데, 결국 문림 프로젝트는 저에게 '스플릿 키보드를 가지고싶다'라는 욕심만을 남겨놓은 채 끝나버리고 말았죠.

 

몇 년의 세월이 흘러 어느정도 비상금을 모아둔 저는, Redox 키보드에 욕심을 가지게 됩니다. 아쉽게도 납땜에는 자신이 없었기 때문에, 직장 동료분 중 납땜을 잘 하시는 분에게 한 턱 쏘고 부탁드릴 예정이었죠. 약속도 받아내고 기판과 필요한 부품들을 모두 주문했지만, 거짓말처럼 모든 부품이 회사로 도착하기 전에 저와 약속한 회사 동료분은 퇴사를 하게 됩니다. 결국 또 다시 몇 년간 Redox 키보드 부품들은 회사에 쌓여있었죠. 아니, 곰곰히 생각해보니까 키캡 빼고는 지금도 회사 한 켠에 자리잡고 있겠군요.

 

아무튼 그렇게 세월이 흘러 빵판을 사서 회사에 있는 납땜기로 납땜도 좀 연습해보고 했지만, 도무지 나아지지 않는 실력에 실제 기판에다 납땜을 하지는 못했는데요. 이런 일이 반복되다보니, 이제는 다시 완성품으로 눈을 돌리기 시작합니다. Ergodox라던가, Moonlander라던가, Delfy라던가... Moonlander나 Delfy나 LED라던가 옵션을 조금만 달면 50만원을 훌쩍 넘어가는 가격에, 관세니 뭐니를 생각하면 쉽게 지를수가 없었습니다. 언제나 장바구니에 찍힌 가격을 한 번 살펴보고, 구글에 검색해서 한화로 얼마쯤 하는지 살펴본 다음에, 조용히 창을 내려놓고는 했었죠. 

 

그러다가 몇 주 전, 우연히 Delfy를 검색하다가 '이번에도 Delfy의 출시가 연기되어, 같은 키배열을 쓰는 키보드를 연습용으로 마련했다가 익숙해지는 바람에 계속 쓰고 있다'는 내용의 글을 발견하게됩니다. 처음에는 음, 이런 키보드도 있구나...같은 생각을 하면서 스크롤을 내리고 있었는데, 납뗌이 가능하면 lily58을 사고 납땜이 불가능하면 iris56을 사서 연습하면 된다는 댓글을 발견합니다. 어! 납땜을 못해도 스플릿 키보드를 자작으로 만들 수 있다구? 관세도 낼 필요 없다구? 키보드에 대해서 잘 아는 건 없었지만, 일단 납땜을 안해도 된다는 점에서 흥미가 크게 셈솟기 시작했습니다. 결국 정신을 차리고보니, 비상금을 털어서 기판을 주문하고 있더군요.

 

2. 부품을 주문하자

우선 https://keeb.io/collections/iris-split-ergonomic-keyboard/products/iris-keyboard-split-ergonomic-keyboard 에서 Rev.7 기판을 주문했습니다. 플레이트 킷, 미들 레이어, USB-C to C 케이블, 미끄럼 방지 발판 스티커... 스위치까지 집어들고 장바구니에 담은 뒤, 계산을 하려고보니 배송료가 50불이 추가로 붙습니다. 히이이이이이익... 통관시 관세가 붙는게 배송료 포함 200불인지 배송료 제외 200불인지 가물가물했지만, 알아보는 것 보다는 스위치를 빼는게 빠를 것 같아서 일단 스위치를 빼고 얼추 200불이 안되는 가격에 주문을 마친 뒤 놀란 가슴을 쓸어내립니다.

 

근데 배송대행지를 쓰면 배송료를 40불은 아낄 수 있겠더라구요. 왜 이런건 주문할 때는 생각이 안 나는지. 그리고 도착한 물품을 보니 C to C 케이블도 굳이 필요한가싶고, 실리콘 고무 발판도 다이소에 가면 더 저렴한 제품을 살 수 있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그야말로 제대로 조사하지 않아서 발생한 멍청비용이 아닐까 싶네요 ' ㅇ');;;

 

스위치는 구글에 검색해보니 마침 알리 익스프레스에서 개당 가격이 좀 저렴한 스토어가 있었고, 키캡도 찾아보니 IDOBAO MA BLUE CAT이 알리 익스프레스에서 저렴하게 판매중이라는 글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물론 알리 IDOBAO 스토어에서 발견한 제품은 50불인가 그랬던 것 같아서, 놀란 나머지 창을 닫을 뻔 했습니다만.

 

연관된 제품이라며 소개하는 걸 보니, 안나프로2 스토어에서 20불에 포인트 키캡을 끼워주는 걸 발견해서 주문했습니다. 정작 스위치와 키보드 부품들은 3일만에 도착했지만, 키캡은 아직 출발도 안한 상태라서 좀 허망하긴 하지만 말이죠.

 

 

아무튼 이렇게 해서 전체 비용은 260불 정도가 들었습니다. 만약 배송대행지를 쓰고, C to C 케이블과 고무패드를 뺐더라면 210불 언저리에서 주문을 마칠 수 있었으려나요 ' ㅇ'... 하나 더 만들어서 회사에도 갖다놓고 쓸까 생각중인데, 그때는 꼭 배송대행지를 써야겠군요. 아무튼 키캡을 빼고 나머지가 도착했으니, 일단 조립을 시작해 봤습니다.

3. 일단 조립을 해보자.

택배상자를 열어보니 이런 모습. 앞에서도 언급했듯 키보드에 대해서 딱히 아는건 없는 상태였기때문에, 무엇부터 해야할지 감이 잡히지 않아서 잠깐 멍때렸습니다. 다행히도 Iris56 조립방법은 https://docs.keeb.io/iris-rev6-build-guide 에서 찾아볼 수 있었습니다. 조립 방법은 유튜브 동영상으로도 제공되므로, 큰 문제없이 조립할 수 있을 것 같네요.

 

그리고 빠르게 스위치 하나를 박살내고야 말았습니다. 멍하니 스위치를 꽂다가, 엄지손가락 위치에 스위치를 꽂는데 왠지 핀이 보드에 안 닿는거에요...? 그래서 '앗차, 이거 반댓면에다 스위치를 꽂아야되는데 잘못 꽂았구나!'하고 생각하면서 스위치를 전부 뽑고있었는데 말이죠. 스위치를 전부 다 뽑고, 기판에 붙이라고 했던 고무 패드도 떼고, 잘 살펴보니 한 쪽 금형이 휘어져있었습니다. 여기서 잠시 혼란이 와서 1차 멘붕.

 

가까스로 집나간 멘탈을 부여잡고 판형을 겹쳐놓은 뒤, 힘으로(!) 굽히니 구부러집니다. 최대한 평평하게 구부러뜨린 뒤, 이번에는 혹시나 몰라서 엄지손가락 부분부터 스위치를 꽂아봅니다. 다행히 잘 꽂히는군요. ㅠㅡㅜ) Iris56 키보드는 납땜을 하지 않아도 되서, 조립과정을 돌이켜보면 스위치를 꽂는게 가장 손이 많이 가는 일이었던 것 같습니다.

스위치를 전부 꽂은 후, 미들레이어를 상판에 고정한 뒤, 뒤집어서 뒷판까지 볼트로 채결해줍니다. 이제 좀 뭔가 있어보이네요. 여기저기 기스도 있고, 고무발판을 붙였다가 떼어낸 접착제 흔적이 보여서 살짝 마음이 아프지만... 어찌됐건 새 키보드입니다. 흑흑...

맥 스튜디오에 연결하니, 맥 스튜디오가 '엥 이거 키보드인 것 같긴한데 무슨 키보드야...? 잘 모르겠는데 무슨 키 배열인지 좀 알려줄래...?'라는 메시지를 띄워줍니다. 101 키배열을 선택하고 대충 엔터. QMK Configure 페이지를 띄워놓고 키를 하나씩 입력해봤는데, 다행히 잘 입력되네요. 키를 커스터마이징하는 것도 재밌을 것 같지만, 일단 키보드에 익숙해지는 게 먼저인 것 같아서 현재 키 입력 방법을 좀 훑어봅니다. 다행히 왼쪽에 B가 있는 것만 제외하면, 기존 입력방식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군요.

 

Redox와는 다르게 넓이가 긴 키캡을 사용하지 않다보니, Redox사양에 따 맞는 키캡으로는 아무래도 부족합니다. 기존에 쓰던 키크론 키보드에 꽂아뒀던 커스텀 키보드를 죄다 뽑아와봤지만, 아무래도 키캡이 부족하군요. 흑흑... 언제오는거야, 키캡... 오긴 오는건가...

 

일단은 QMK Configure 페이지를 열어보고 키 조합을 테스트해봤는데, 생각보다 입력이 그렇게 어렵지는 않습니다. 키 배열에 적응하지 못해서 장터에 내놓는 케이스도 많이 있다고 하던데, 다행히도 쉽게 적응할 수 있을 것 같네요. 처음에는 오타가 꽤 많이 났습니다만, 조립이 끝난지 한 시간 쯤 넘어가니 이래저래 오타도 줄어들고, 특수문자도 어느정도 입력할 수 있게 됐네요. 당장 내일 회사로 들고가서 업무에 투입할 수 있을 것 같은 그런 느낌입니다. 정말이지 다행이 아닐수가 없군요 ' ㅇ'

 

장점으로는 일단 왼손과 오른손의 거리가 멀어지다보니, 자연스럽게 가슴과 허리를 편 자세를 유지하게 됩니다. 거기에 더불어서 손목을 거의 움직이지 않은 상태에서 타이핑을 하다보니, 피로도가 현저히 줄어드는 느낌이에요. 확실히 스플릿 키보드를 사용하는데는 이유가 있긴 하군요. 단점이라면 B키가 왼쪽에 있다보니, 저도 모르게 ㅠ를 입력해야 하는 상황에서 ㅜ를 입력하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랄까요. 아마도 이건 익숙해지면 금방 해결될 문제일 것 같긴 합니다. 쉬프트를 눌러서 쌍자음을 입력하는 게 불편해서, 세벌식을 익히는 분들도 계시다는 말을 듣고 몹시 걱정했는데, 다행히 저는 두벌식으로 충분한 것 같군요.

 

회사에서 사용하려면 아무래도 당분간은 키보드를 들고 다녀야 할 것 같은데, 케이스도 없다보니 털래털래 들고다녀도 되는건가... 싶어서 좀 걱정되긴 하네요. 당분간은 그냥 집에서 쓰고, 월급이 나오면 기판을 또 다시 주문해야할까싶기도 하구요. 흐으음 ' 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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