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5. 9. 09:20ㆍLife journal
정확히 말하면 인도에서 사람 속도로 서행 중, 가게에서 튀어나온 아주머니가 걸려서 넘어지셨다. 일단 집에 자동차가 있는 것도 아니고, 교통사고를 당해본 적도 없는 나로써는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에 대해 정말 무지했다. 우선 아주머니에게 괜찮냐고 말하고 일으켜드리려는데, 왠 사내가 갑자기 나타나더니 계속해서 '이 사람이 잘못한거니 아주머니는 이 사람과 대화할 필요가 없다'라는 말투로 계속 아주머니의 발언을 끊었다. 그러더니 이런걸 왜 인도에서 타냐, 나더러 아주머니가 나오는걸 봤으면 멈춰야 하는거 아니냐고 따졌다. 아무래도 사건을 처음부터 보지는 못한 것 같아서 '사람속도로 서행을 하는 와중에, 아주머니가 너무 급작스럽게 튀어나오셔서 못봤다.'라고 답했더니 '서행이 아니라 멈췄어야지!'라며 외치는게 아닌가. 사실상 서행이 말이 좋아 서행이지, 그 아줌마는 내가 그 위치 그대로 자전거, 아니 그냥 걸어갔어도 부딪혀서 넘어질게 뻔했다. 잡다한 말을 다 빼니 마치 그 사람이 두 마디만 한 것처럼 묘사됐지만, 사실상 시종일관 반말로 길길이 화를 내며 사건 당사자인 아주머니가 뭔가 말을 할 때마다 그 말을 끊어버리니 당황스럽기 그지없었다. 게다가 분명 아주머니에게 '괜찮으시냐, 너무 갑자기 튀어나와서 못봤다. 죄송하다'라고 말했음에도 불구하고 '사람이 넘어졌으면 먼저 죄송하다, 괜찮으시냐 하고 묻는게 도의가 아니냐'하고 물어보니 어처구니가 없었다. 그렇게 말했다, 하고 답변한들 화가 가라앉으실리도 없으니, 계속해서 길길이 날뛸 뿐이었다.
결국 지나가던 아저씨도 할아버지까지도 아주머니가 잘못한게 맞다며, 그 사내를 진정시켰다. 사실 진정시켰다기보다는 본인 일도 있는데 그렇게 화만 계속 내봤자 얘기가 진행되질 않으니 그런거겠지만. 그 아주머니네 옆 가게 아저씨 이야기를 들어보니, 그 사내가 아주머니의 아들이란다. 그 이야기를 듣고나니 그제서야 왜 그렇게 그 사내가 화를 쉽게 누그러뜨리지 못했는지 알 것 같았다. 여하튼 그 사내가 그냥 넘어지신거니 이름과 연락처만 적어달라고 하기에, 그렇게 했다. 다음주 아침이 되자 연락이 왔는데, 핸드폰 카메라 고장과 한의원에서 침을 맞겠다며 치료비 및 수리비를 보내달라는 전화를 했다. 치료받고 남는 금액은 돌려주겠다나. 혹시 모르니 정형외과 가서 엑스레이 찍어보라고 말씀드리고, 생활비 명목으로 통장에 남아있던 30만원을 송금했다. 사실상 수중에 돈이 남아있질 않으니 꽤 막막했지만, 사람이 다쳤다는데 뭐 어쩌겠는가. 여튼 주말에 시간날 때 연락하시면 찾아뵙겠다고 하고 통화를 끝냈다. 그렇게 5일의 연휴가 시작됐다. 연휴동안 연락은 오지 않았다.
연휴가 끝난 수요일, 일을 하고 있자니 그 쪽에서 연락이 왔다. 딱 봐도 한의원에서 한약을 지어먹지 않으면 나올리가 없는 금액인, 38만원 가량이 찍힌 영수증을 문자로 보냈다. 그리고 핸드폰도 액정이 나가서 수리했다면서, 20만원을 더 송금하면 나머지 치료비는 본인이 감당하겠다는 말과 함께. 뼈를 부러뜨렸거나 해서 병원에 입원했으면 어느정도 이해는 했겠지만, 타박상 및 어깨에 담걸려서 움직이기 힘들다는 사람이 한의원을 다니면서 38만원을 치료비로 썼다는데 헛웃음만 나왔다. 딱 봐도 이왕 사고가 난 김에 뜯어먹을 수 있는만큼 뜯어먹겠다는 속셈이 너무 뻔히 보여서 어처구니가 없었다. 그래도 일단 내가 사고를 낸 셈이고, 별로 대화하고 싶은 마음도 없었기에 돈을 송금하려고 통장잔고를 보니 돈이 없었다. 사실 그렇지, 취직한지 얼마 되지도 않았으니 잔고가 넉넉한 것도 아니고, 갚아야 하는 빚만 하더라도 수두룩한데 생활비 30만원을 몽땅 보내놨으니 뭐가 남아있을 턱이 있나. 전화해서 '지금 당장은 돈이 없다, 어떻게 조금만 감면해주시면 어떻게든 마련해드리겠다.'라고 하니 '그럼 다음달에 월급 타면 주세요.'라기에 알겠다며 전화를 끊었다. '사고가 나서 서로 미안하고, 없는사람한테 너무 요구하게 되서 마음이 그렇다'라는 말과 함께.
결국 타고 다니던 나인봇 원은 아는 선배에게 10개월 분납으로 싸게 넘겼고, 아주머니도 그냥 한의원의 사탕발림에 넘어가서 약 지어 드신거겠지, 하고 생각하기로 했다. 사실상 당장 나인봇 원을 처분한 값이 손에 들어오는게 아니니까, 현 시점에서 대략 100만원의 손실이 발생한 셈이라 당분간은 허리띠를 졸라매고 살아야 할 듯 하다. 결국 사고가 난 뒤에야 도로교통법을 정독했는데, 큰 돈을 내고 큰 교훈을 산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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